지난글에 이어 일본의료 경험기입니다.  

2-3) 3주차는 종양내과에서 실습했다.
  – Point : 환자교육, 부작용 관리 시스템. 구원자 콤플렉스에 대한 반성.

  환자 교육과 부작용 관리를 위한 협업

 종양내과를 실습하다 보니, 내가 관심있게 본 것은 항암치료 부작용을 관리하는 방법이었다. 환자가 항암치료를 받으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관리하기 위해 세인트 마리아나 병원의 시스템이 있었는데, 각 병동에 꼭 한명 이상 약사가 한명씩 존재했고, 이들은 의료진이 약물을 처방 시에 부작용과 같은 것을 논의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스마트하고 자격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종양내과에서는 자주 약사, 간호사들과의 컨퍼런스를 통해 교육활동을 앞장섰는데, 약사 집단을 항암치료 환자의 부작용 관리를 위해 활용하고 있었다. 의사들의 경우 한정된 시간에 많은 수의 환자를 보아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항암 치료에 대한 부작용을 상세하게 관찰하기가 쉽지 않은데, 세인트 마리아나의 경우 먼저 약사들이 환자들을 20분 정도 면담을 해서 환자들의 부작용 상황을 판단하고, (1차 진료와 환자 교육) 이러한 초진을 통해 얻어진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 의사는 그 내용을 판단하고 전체적인 치료 방향을 재설정한다. (2차 진료와 환자 재교육) - 그 이후 외래를 나온 환자는 세 번째로 간호사와 면담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환자가 의사 약사와의 진료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다시한 번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의사의 진단과 치료 계획을 위해서 어떠한 방식을 취해야 하는지 교육받게 된다. (항암치료로 인한 흔한 부작용 중 하나인 손톱 주위염이 발생한 환자에서 taping을 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 등)



  의사는 신이 아니고, 대신 결정할 수 없다.

  Ogura 선생님의 외래를 참관하던 도중,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있었는데 의학적으로는 항암치료를 받으면 재발률이 8%, 받지 않으면 55%라고 했다. 그러나 환자의 가족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환자가 chemo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환자가 들어오기 전 이런 내용을 먼저 들은 나는, 이 선생님은 어떻게 환자를 설득할까? 하는데 집중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진료에서 선생님은 환자를 설득하기보다, 환자에게 다시 한번 재발률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을 하고 상기시켜 줬을 뿐 내가 기대하는 설득의 느낌은 아니었다. 명확하게 chemo를 받는 것이 의학적으로 옳은 선택인데, 환자를 설득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실습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내가 환자를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만하게 판단했구나. 라는 것이었다. 의학은 의학일 뿐이며 신이 아니다. 의학적 근거를 가진 확률은 확률일뿐, chemo를 받는다고 해서 환자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으며, 항암제로 인한 부작용이 여명을 늘리는 것보다 환자에게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 없이 그저 나의 판단이 의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환자에게 옳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의학적으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확인하고, 환자를 설득해 볼수는 있으나 결과적으로 환자에게 판단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의사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2-4) 4주차 – 소아과
  - point : 환자 안전, 어린 환자와의 교감, 소아과의 어른 환자들

  세인트 마리아나대학병원의 소아과 병동은 모두 폐쇄병동(흔히 알려진 정신과 병동같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구조)으로 운영되며, 부모님도 면회만 가능할 뿐 아이와 같이 잠을 자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인데, (아이들이 마음대로 병동 밖을 돌아다니면 다칠 수 있기도 하고, 유괴 시도가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안타까운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폐쇄병동에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으로 입원한 환자를 면회 온 친구들과 부모님이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지 못하고,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 하는 모습이 정말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러나 감염 가능성이 높은 백혈병 소아의 경우 특히 접촉자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환자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아과 병동은 다른 병동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cctv가 존재했고, 아이들이 입원해서 눕는 베드의 경우도 입원실의 일반적인 베드와는 다른 구조로, 아이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도록 아이를 가두다시피 하는 형태였다. 이것은 보기에는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특이한 것은 각 병실의 밖에 있는 환자의 정보가 있는 표지판을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로 가려두었는데, 이는 소아과 외의 병동들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였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질문하자, 환자 정보의 보호 차원은 물론 아이의 호실만 알고 아이와 관계를 이용하여 아이에게 해를 끼치거나, 유괴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였다.

  어린 환자와의 교감 :
  또한 우리나라의 개인병원처럼 아이들이 입원한 환자들의 각 침대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가득했다. 곧 할로윈을 앞둔 병동은 곳곳마다 할로윈 장식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기별로 동물(강아지)를 데려와 소아과 입원환자들과 교감하게 하거나,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전시하는 전시회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어, 폐쇄 병동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이 그래도 위안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진을 같이 돌던 한 선생님은 소아과에서는 의학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의학적인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할 때도 많다고 하셨다.

  마흔이 넘은 성인이 소아과를?
  우리나라와 다른 점으로 소아과에 20세가 넘는 어른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소아 혈액내과의 경우 40대 환자들도 매주 내원하여 Coagulation factor 주사를 맞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의 경우 특정 질병이 어렸을 때에 Onset 한 경우, 그 연장선상에서 질병이 발생한다면 어렸을 때부터 그 소아를 진찰했던 소아과에서 환자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따라서 소아과 입원 환자 중 30세가 넘는 환자로 염색체 이상을 지닌 환자를 볼 수 있었고, 다운 증후군과 함께 폐렴으로 입원한 환자도 있었다.

 
2-5) 그 외 우리나라 의료와 다른 점들

  일본의 경우 의료용어를 영어로 그대로 쓰거나 거의 같은 빈도로 사용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카타카나라는 표음문자로 적고, 완전히 일본화된 발음으로 교육하고 배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의학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일부 교수님들은 한국 학생들에게 케이스나 질병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하시었고, 학생들의 경우에는 더욱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상부내시경과 하부내시경을 한 번에 하는 경우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그것은 일본에서도 병원마다 방침이 다르긴 한데, 세인트마리아나 대학에서는 상부 위장관과 하부 위장관 내시경을 동시에 할 경우 복강 내로 주입되는 가스가 많아져 복부 불편감을 호소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외래도 특이적인 사항이 있었다. 한쪽 벽면이 완전히 뚫려있어 우리나라에 비해 환자의 사생활은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더 투명한 사회라는 장점도 있다. 또한 여자 환자에 대한 피지컬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간호사 한명이 대동하여 피지컬을 하였다.
  또 한 환자당 대기시간이 평균적으로 2-3시간 정도 되었는데, 대기시간 가지고 화를 내는 환자들이 한명도 없었다. (옆 진료실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들리는 구조인데, 옆 진료실에서도 싸움이 나거나 언성이 높아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여러 선생님들께 여쭤보니 일본의 진료실에서는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하였다.


3) 후기 및 결론
  이번 세인트 마리아나 의과대학 실습은 나에게 있어 외국에서 한달 동안 실습을 하며 생활한다는 도전이기도 한 동시에, 새로운 의료 제도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와 나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슴 설레는 기회였다. 한 달이 지난 뒤 돌아보면 외국 의과대학의 실습에 도전하고, 한 달 동안 열정적으로 실습한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한 시간이었다.

  아쉬웠던 점으로는 내가 원래 실습하고 싶어했던 정신과 실습을 못한 것이 있었다. 일본 친구들이나 병원 의사 선생님들께서 직접 얘기해 주신 바로는 세인트 마리아나 의과대학이 전문의 국가고시와 같은 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국가적인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 이후 대부분의 교수님, 선생님들이 사표를 내어 실습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셨다. 혹시나 세인트 마리아나 병원의 분원인 tama 병원에서라도 정신과를 잠깐이라도 참관할 수 없는지 물어봤으나 긍정적인 대답을 듣지 못했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직접 요양홈을 관찰하고 그 시스템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실습기간이 촘촘하고 매일 오후 5시 이후에 실습이 끝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 의료 인문학과 관련된 우리학교 교수님들의 강의에서 ‘소의 – 중의 – 대의’의 개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의(小醫)는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중의(中醫)는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이며, 대의(大醫)는 사회의 병까지 고치는 의사이다.


  일본의 의료 현장을 보고 느끼는 것이지만, 노령화에 대비해기 위해서 분명히 의료 현장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사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질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가 의사 집단에게 뒤늦게 대책을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사회 문제에 대해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의사가 되어 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실습 기간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우선적으로 학교에서 관리해 주시는 대로 의학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불어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며 나름대로 그 대응방안에 대한 고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이러한 고민에 나침반이나 힌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해외사례들을 공부하기 위해서 영어공부를 기본으로 하여 외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챙겨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