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사실이다. 집이 돌 조각들로 만들어진 것처럼 과학도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돌 조각들이 집이 아니며, 사실의 무더기가 반드시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헨리 푸앙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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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맹독성 리트리버입니다.

의학의 과학적 한계에 대해 다룬 책을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늘 '과학'에 대한 신뢰가 있고, 과학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의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나와 가족의 건강만큼 소중한 것은 없으니 늘 의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것은 맞습니다.

'과학'은 현재 우리가 나아갈 수 있고, 알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미래에 어느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비 과학'으로 치부될 지도 모릅니다.

'과학'이 지금 이 순간 '진리'에 가장 가까울지 몰라도, '진리' 그 자체는 아님을 늘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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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예과 시절에에 배웠던 ‘의학철학의 이해’ 라는 책에서 현대 의학이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치료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공부한 적이 있다. 이 책 역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 의학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genome project로 인간의 유전자가 모두 밝혀진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질병관 - 계몽시대의 감염성 질환에나 걸맞는 질병관 - 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즉 서양의학은 산업혁명 이후 이른바 '과학'에 편입되어 발전한 까닭에 경험을 통한 원인과 결과 파악에만 집중하는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있지만, 공중보건·예방접종·항생제 등의 도움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된 현 시대에는 만성 퇴행성 질환이 과거 전염병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질병관 역시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병자’는 보지 않고 ‘병’에만 매달리고 있고, 병을 앓는 ‘인간’ 중심의 의학이 아니라 ‘질병’ 중심의 의학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의학의 기초 학문인 해부학과 조직학을 지적한다.

  우리 몸을 더 작고 더 정밀하게 분석하려는 현대의학은 해부학과 조직학을 발달시켰고, 생명과학 분야에서 세포와 유전자까지 훤하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성과도 얻었다. 그러나 부분을 정밀하게 탐구하다가 정작 중요한 ‘생명의 전체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나무의 나이테를 보다가 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우리 몸은 각 기관과 세포를 모두 조합하면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부분을 합한 것 그 이상의 무엇이 바로 생명체이다. 인체는 스스로를 조직하고 조절하며, 각 부분이 서로 관계를 맺고 균형과 조화를 도모하는 유기체이다. 

  이런 유기적 시스템, 즉 전체성이 있기에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고도로 전문화된 의료 시스템을 갖춘 현대의학이 벽에 부딪힌 원인을 우리 몸의 독립된 부분의 실체에 집착하느라 생명체의 전체성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찾는다.

  이 책이 지적하는 문제들을 보며 얼마전에 소개한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 간다'가 떠올랐다. 작가는 입원하실 때만 해도 스스로 잘 걸어다니셨던 아버지가 퇴원할 때가 되니 다리 근육이 다 빠져서 걸어다니지 못했다며, 왜 의료진중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사실 현대의학은 고도로 전문화 되었고, 달리 말하면 자기의 전공 분야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환자나 환자 가족보다 못한 지식을 갖는 경우도 있다 - 워낙 인터넷이 발달하여 환자나 환자 보호자도 무서울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 

인간을 통합적으로 보고, 환자의 질병에 대한 치료와 더불어 전체적인 질병 증진에 대한 케어도 분명히 필요하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핵심은 시스템과 돈이다.

본인 과의 환자를 보는데도 정신이 없어서 매일 3시간도 못자고 일을 하는 의사는 환자를 전체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저 '00세, xx질환 환자..'라고 인식하는 것이 전부이다.

시스템적인 변화와 의료진의 '환자'중심 사고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의학의 '질병에 대한 집중'이 일으키는 문제가 대체의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될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든다. 

  물론 현대의학이 채우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환자의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대체의학은 존재하는 것이 건강하다. 그러나 대체의학은 아직 체계화의 문제, 검증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대체의학인 한의학만 하더라도 어떤 한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냐에 따라 진단 내용과 처방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대체의학이 현대의학의 자리를 쉽게 대체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예과 때에 배웠던 의학 철학에 대한 생각이 새록새록 다시 떠올랐다. 미래에 임상의가 되었을 때에도 이러한 현대 의학의 문제와 같은 큰 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인정하는 태도를 지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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